종친회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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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인물

정식[廷式, 1529 - 1592]
작성자장수황호안공파()작성일2022-08-31조회수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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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산양서원 묘정비 [ 三陟山陽書院廟庭碑 ] >>

황희(黃喜)를 제향하기 위해 4대손 황맹헌(黃孟獻)이 이곳에 비를 세웠고, 풍우로 무너진 것을 1578년(선조 11) 6대손 황정식(黃廷式)이 다시 세웠다. 

* 생몰년 : 1529(중종 24) - 1592(선조 25)
* 자 : 경중(景中)
* 관직 : 참의
* 세계 : 석부-균비-군서-희-치신-사장-섬-기준-열-정식(10세)

조선 중기 문신, 1561년(명종 16)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할아버지는 황기준(黃起峻)이고, 아버지는 오위장(五衛將) 황열(黃悅)이며, 어머니는 허용(許墉)의 딸이다. 형이 장계부원군(長溪府院君) 황정욱(黃廷彧)이다.
통사랑(通仕郞)으로 1561년(명종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에 임명되었고, 병조정랑으로서 《명종실록》 편수에 참여하였다. 1569년(선조 2) 정언에 임명되어 용궁현감 이종(李悰)을 탄핵하였다가, 풍문에 의거한 탄핵이라 하여 한때 관직이 갈렸다가 다시 정언에 올랐다.
이후 1580년(선조 13) 
삼척부사·파주목사를 거쳐 1587년(선조 20) 우부승지에 임명되었으며, 곧 승지에 올랐다. 삼척부사로 있을 때 〈태조대왕선묘기(太祖大王先墓記)〉의 기록에 태백산 노동(蘆洞)에 목조(穆祖)의 고비(考?) 능침이 있다는 설을 확인하기 위해, 탐색을 벌일 것을 주장하여 조사를 벌였으나, 확증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 해 5월 강원도로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호가(扈駕)하다가 평양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호성원종훈(扈聖原從勳)에 채록되고 이조 참판에 추증


삼척 소공대비 [ 三陟召公臺碑 ] 는 1578년(선조 11) 6대손 황정식(黃廷式)이 삼척부사로 부임하였을 때 다시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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