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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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인물

적[迪, 1541 - 1591]
작성자장수황호안공파()작성일2022-08-31조회수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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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몰년 : 1541(중종36 辛丑)11월19일 - 1591(선조24, 辛卯)7월1일

* 자 : 계보(啓甫)

* 관직 :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 세계 : 석부-균비-군서-희(방촌)-치신(호안공)-사효(양정공)-개-윤공-적(9세)

 

    양정공 사효(事孝)의 증손(曾孫). 무민공(武愍公) 진(進)의 兄.

 

    무예(武藝)로 과거(科擧)에 합격하여 충순위훈련원봉사(奉事)직에 있으면서, 청렴결백(淸廉潔白)하고 근언신행(謹言愼行)하였음으로 관원들이 감복을 받았다. 경인년(1530)에 동생 進(武愍公)이 正使 從叔 允吉(松堂公)을 수행하여 일본에 갔을 때, 보검(寶劍) 2자루를 사가지고 돌아와서 “미구(未久)에 저 왜구(倭寇)가 반드시 침범해 올 것이니 우리 형제는 장차 이 칼을 나누어 쓸 것이라”며 형제간에 1자루씩 나누어 가졌다. 그 후 조석으로 불상(不祥)의 징조가 옴에도 조정에서는 희락에 빠져 국방에 힘쓰지 아니하니, 분격하여 소신(所信)을 기탄없이 현실대로 기록, 임금에게 직접 상소하여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에게 무망(誣罔 : 사실을 속임)의 죄를 다스리고 겸하여 왜구를 방어할 계책을 수립하소서” 하니, 그 당시 조정고관들은 公이 조야를 선동한다고 모함하여 공에게 죄를 주어, 전주옥(全州獄)에 수감하니, 동생 進(武愍公)께서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 구출은 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근심걱정으로 번민하다가 병이 생겨, 사가(私家)에 돌아가 임진왜란 발발 9개월 전인 1591년7월1일 51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나시니, 국민들이 이를 애석하게 여김으로, 相臣(宰相)들이 포상(褒賞)을 주청하여 1594년(선조28년)에“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의 증작(贈爵)을 내리시었으니 이는 先祖의 忠義에 報答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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