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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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인물

승원[昇源, 1732~1807]
작성자장수황호안공파(hwgej@naver.com)작성일2022-10-13조회수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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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몰년 : 1732(영조 8) - 1807(순조 7)
* 자 : 윤지(允之)
* 시호 : 문헌(文獻)
* 관직 : 상호군
* 세계 : 석부-균비-군서-희-치신-사장-섬-기준-열-정욱-혁-곤후-상-이미-성-처신-환-승원(18세)

문정공 정욱(廷彧)의 8세손 형조좌랑(刑曹佐郞) 환(?)의 아들.
종형인 경원(景源)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765년(영조 41) 생원(生員)이 되고, 1771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773년 정언(正言)으로 양사(兩司) 합계(合啓)로 조영순(趙榮順)의 처벌을 상소하는 대론(臺論)에 참여하지 않아 흑산도(黑山島)에 장류(杖流)되었다.

1781년(정조 5)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대사성(大司成) 이조참판(吏曹參判),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지내고 순조 (純祖) 초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로서 강화 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중이던 은언군(恩彦君) 인(#)의 탈출사건이 일어나 파직 당했다.

1806년(순조 6)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을 거쳐 이조판서(吏曹判書)로서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임, 이듬해 상호군(上護軍)으로 죽었다.

재상의 자리에 있었으나 거처(居處)나 음식은 가난한 선비와 같이하였다. 문장에 능하여 화성행궁(華城行宮) (景龍館)의 상량문과《한남루기(漢南樓記)》를 지었고, 저서에《일통표(一統表)》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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