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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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인물

대중[大中, 1551~1597]
작성자장수황호안공파()작성일2022-08-31조회수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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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몰년 : 1551(명종 6) - 1597(선조 30)* 자 : 정숙(正叔)* 호 : 양건당(兩蹇堂)* 義士, 강진입향조(康津入鄕祖)* 세계 : 석부-균비-군서-희-치신-사효-첩-윤정-대중(9세)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활약한 무장 으로 학문과 효행으로 정릉참봉(貞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나 영암군수로 부임하였던 조부를 따라 강진 구상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어머니가 병환중일 때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어 약재로 사용하였고 그래서 그가 한쪽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당시 사람들은 그를 효건(孝蹇)이라고 불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어가를 호위하는 별초군에 지원하였다. 전국에 무예가 뛰어난 장정을 80여 명을 선발하였는데 황대중은 활쏘기 등에 뛰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호위 무사로 활약하였다. 1953년에는 명나라 이여송의 휘하에서 진주성 싸움에 참전하였다. 하지만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이순신 장군 휘하에 들어가 해상전투에 참전하였다. 황대중은 이때 적의 총탄을 맞아 한쪽다리 마저 절게되어 양건당(兩蹇堂)이라는 호를 쓰게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병마절도사 이복남과 함께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의 총탄을 맞아 전사하였다. 전라남도 강진군 구상리에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이 있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정려가 명해졌으며 원종훈(原從勳)에 녹훈되었다.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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