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인명

종친회 인명

역대인물

희[喜, 1363~1452]
작성자장수황호안공파()작성일2022-08-31조회수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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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선생영당>>

* 생몰년 : 1363(공민왕 12) - 1452(문종 2)

 

* 자 :구부(懼夫)    

* 호 : 방촌(?村)

* 시호 : 익성(翼成)

* 관직 : 영의정

* 세계 : 석부-균비-군서-희(4세)

 

1363년(공민왕 12) 2월 10일 송경 가조리(松京=開城 可助里)에서 판강릉부사(判江陵府使)군서(君瑞)와 용궁 김씨(龍宮 金氏)의 차자(次子)로 태어나 90 향수(享壽)하고, 1452년(문종 2) 졸(卒)하였다.


<<익성공 유묵>>

초명은 수로(壽老), 자(字)는 구부(懼夫), 호(號)는 방촌(?村)이며 시호(諡號)는 익성(翼成)이다.

1376년{禑王 2) 음보(蔭補)로 복안궁 녹사(福安宮 錄事)가 되었고 1385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1389년(恭讓王 元年) 문과(文科)에 급제, 이듬해 성균관 학관(成均館學官)이 되었다.

고려(高麗)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은거했으나, 조선 태조(太祖)의 간청으로 1392년(太祖 元年)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가 되었다. 그후 직예문춘추관(直藝文春秋館).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우습유(右拾遺). 경원교수(慶源敎授). 경기도 도사(京畿道 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1400년(정종 2) 형조. 예조. 병조. 이조의 정랑(正郞)을 거쳐 1404년(태종 4)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가 되었다가 이듬해에 승정원 지신사(承政院 知申事)에 올랐으며 이후 태종(太宗)의 극진한 예우(禮遇)를 받았다.

1408년 민무휼(閔無恤) 등 왕의 처족(妻族)이 횡포를 부리자 이를 제거했고, 그 후 형조, 병조, 예조, 이조, 호조의 판서(判書)를 역임

1416년(태종 16)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세자(世子: 양녕대군)의 폐출(廢黜)을 반대하다 공조판서(工曹判書)로 전임되었다.

1418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가 되었으나 양녕대군의 세자 폐출(충녕대군 세자 책봉)을 극력 반대하여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교하(交河)로 유배되었다가 얼마 후 남원(南原)으로 이배(移配)되었다. 

1422년(세종 4) 풀려 나와서 좌참찬(左參贊)에 기용되고 예조판서(禮曹判書)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 대사헌(大司憲) 이조판서(吏曹判書) 우의정(右議政)을 역임

1427년 좌의정(左議政)에 올라 세자사(世子師)를 겸했으나, 1430년 투옥된 태석균(太石鈞)의 감형(減刑)을 사사로이 사헌부에 부탁한 일로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

이듬해 복직, 영의정(領議政)에 올라 이후 1449년 치사(致仕)할 때까지 18년간을 영의정(領議政)에 재임하면서 농사의 개량, 예법(禮法)의 개정, 천첩(賤妾) 소생의 천역(賤役) 면제 등 훌륭한 업적을 남겨 세종의 가장 신임 받는 재상으로서 왕을 보좌했다.


<<반구정>>

 

 

 


 


<<옥동서원(玉洞書院) 과 창계서원(滄溪書院)>>

 

익성공(翼成公) 연보(年譜)

1363(공민왕 12년) 2월 10일 송경(개성) 가조리에서 탄생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났고 성품이 관대하고 검소하였음

1376(14세. 우왕 2년) : 음직(蔭職)으로 복안군 녹사에 제수됨* 음직 : 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혜택으로 얻는 벼슬* 복안궁 녹사 : 사건을 기록하는 궁의 서기(8내지 9품 벼슬)

1379(17세) : 부인 최씨와 결혼(본관은 미상)

1383(21세) : 사마시에 합격* 사마시 : 생원과 진사를 뽑는 과거(소과. 지금의 대학 입학 과정)

1385(23세) : 진사시(지금의 대학 졸업 과정)에 합격

1386(24세) : 부인 최씨 별세1388(26세) : 부인 청주 양(楊)씨와 결혼

1389(27세. 공양왕 원년) : 문과(지금의 고등 고시) 급제

1390(28세) : 성균관 학관(지금의 대학 교수)에 보직

1392(30세. 조선 태조 원년) :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경기도 개풍군)에 들어가 은둔하였으나 조선 이성계는 경서에 밝으며 인품이 뛰어나고 정치에 밝은 인물을 구하였다.

고려의 충신들이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할 사람으로 방촌 선생을 선정하였으나 방촌께서는 극구 반대하셨다. 그러나 간곡히 권하여 벼슬길에 나감성균관 학관으로 다시 임명되어 세자 우정자를 겸직함

* 세자 우정자 : 경연에서 세자를 가르치던 벼슬(시강관). 정9품

* 경연 : 임금이 학문을 닦기 위하여 명망이 높은 신하에게 경서(유교 사상과 교리를 옛 성현들이 써놓은 책)를 강론하게 한 일 또는 그 곳

* 조선 시대의 품계 : 9품부터 1품까지로 각각 종과 정으로 나누어 모두 18품계이었음1395(33세) : 사헌부 감찰로 전임

* 사헌부 : 정치를 논하고 풍속을 바로 잡으며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풀어 주고 관리의 잘잘못을 탄핵하던 관아

* 감찰 : 사헌부의 정6품 벼슬. 국고 출납, 조정 예회, 과거 따위의 일들을 살펴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바로 잡는 일을 맡았음

1397(35세) : 장자 치신 출생

1399(37세. 정종 원년) : 우보궐에 임명

* 우보궐 : 조선초 문하부에 딸려 간쟁을 맡은 정5품 벼슬. 태종 원년(1401)에 사간원의 우헌납으로 바뀌었음

* 문하부 : 태종 원년(1401) 의정부가 생기기까지 모든 정치를 맡아보던 최고의 의결 기관

1400(38세) :형조, 예조, 이조, 병조의 정랑을 역임

*정랑 : 6조(이조, 예조, 호조, 병조, 형조, 공조)의 정5품 벼슬

1402(40세. 태종 2년) : 부친 휘 군서 별세

1404(42세) : 사간원 우사간대부에 승진

* 사간원 : 조선 때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하나로 임금께 간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 우사간대부 : 태종 원년(1401)에 우간의대부를 사간원으로 이름을 고치고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한 벼슬

* 대부 : 조선 시대에는 정일품에서 종사품까지의 벼슬 이름 뒤에 붙였음

* 당상관 : 정3품 이상의 벼슬아치

1405(43세) : 승정원 지신사(도승지)로 승진

* 승정원 :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신하들이 올리는 모든 문서를 임금께 아뢰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역할을 함)

* 지신사 : 태종 때 대언사의 으뜸인 정3품 벼슬

* 도승지 : 승정원의 여러 승지 가운데 으뜸인 정3품 벼슬

1408(46세) : 민무휼 등 왕비 친족의 횡포를 임금께 간언하여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음

1409(47세) : 참지의정부사에 승진 이어 형조 판서에 승진* 참지 : 조선 때 병조의 정3품 벼슬

1410(48세) :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

* 대사헌 : 사헌부의 최고 벼슬, 종2품

1411(49세) : 병조 판서에 임명1413(51세) : 예조 판서에 임명

1414(52세) : 의정부 찬성과 예조 판서 역임

* 의정부 : 조선 시대 가장 높은 행정 기관

* 찬성 : 의정부에 딸린 종1품 벼슬

1415(53세) : 이조 판서, 의정부 참찬, 호조 판서 역임

* 참찬 : 의정부에 딸린 정2품 벼슬

1416(54세) : 이조 판서가 되었다가 세자 폐출을 반대하여 공조 판서로 전임

1417(55세) : 평안도 도순문사겸 평양 부윤에 임명되었다가 형조 판서에 임명

* 도순문사(都巡問使) : 고려 때와 조선 초기에 경관직(京官職)에 있으면서 수시로 지방 관아에 나가 민정을 살피던 벼슬

* 부윤 : 조선 시대 정2품의 외관직, 4부(영흥(함흥)부, 평양부, 전주부, 경주)에 두었음

1418(56세) : 판한성부사에 재임중 세자가 폐출되고 충녕대군(세종)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를 반대하다가 교하(지금의 경기 파주)로 귀양갔다가 5월에 다시 남원부로 폄출(벼슬을 떼어 물리침)되어 60세까지 남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지냄

* 한성부사 : 한성부의 으뜸 벼슬

* 한성부 : 서울의 행정, 사법을 맡아 보던 관아

1422(60세. 세종 4년) : 귀양에서 풀려 경시서 제조에 임명되었다가 의정부 참찬에 임명됨

* 경시서(평시서라고도 함) : 서울의 시전을 관리 감독하고 물가 조절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 제조 : 종1품, 2품의 품계를 가진 사람으로 각사 각청의 우두머리가 아니면서 임시로 그 일을 맡아보던 벼슬1423(61세) : 예조 판서 직에 있다가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흉년의 기근을 잘 해결하여 백성들로부터 숭상을 받음

* 관찰사 : 조선 시대 각 도나 부의 으뜸 벼슬(종2품 문관). 그 지방의 민정, 군정, 재정, 형정을 통할하였음

1424(62세) : 의정부 찬성에 임명

* 찬성 : 의정부에 딸린 종1품 벼슬

1425(63세) : 대사헌에 임명되었다가 의정부 찬성에 전직

1426(64세) : 이조 판서에 전직했다가 우의정에 승진

* 우의정 : 의정부에 딸린 정1품 벼슬

1427(65세) : 좌의정에 승진하여 세자의 스승을 겸직

* 좌의정 : 의정부의 정1품 벼슬. 영의정 다음으로 백관을 통솔하고 일반 정치 및 외교의 일을 맡아 봄

1427(65세) : 모친 별세(불사(佛事)를 행하지 않고 일체 가례를 준행함)

1430(68세) : 태석근의 사건으로 좌의정에서 파직되고 파주에서 휴양

1431(69세) : 영의정에 승진

* 영의정 : 의정부의 으뜸 벼슬. 지금의 국부총리에 해당됨

1432(70세) : 궤장(?杖)을 하사 받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감

* 궤장 : 안석과 지팡이조선 때 나이 일흔이 넘은 대신들에게 임금이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주고 잔치를 베풀어 주었음

* 기로소 : 조선 때 노인을 예로써 대접하는 뜻으로 나이가 많은 임금과 정2품 이상의 문관들이 모여서 놀던 곳. 기사(耆社)라고도 함

1440(78세) : 초헌을 하사 받음

* 초헌 : 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수레

1448(86세) : 부인 정경부인(貞敬夫人) 양(楊)씨 별세

* 정경부인 : 정1품, 종1품인 문무관의 부인에게 주던 봉작

1449(87세) : 영의정을 치사(늙어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하였으나 나라에 중대사가 있으면 임금께서 반드시 근시(近侍)를 보내어 자문하여 이에 따름영의정에 18년간 재임하면서 농사의 개량, 예법의 개정, 국방 정비 및 국토 확장, 천첩 소생의 천역 면제, 배불 정책 등 선정을 베품

1452(90세. 문종 2년) : 별세하심. 수 90세종의 종묘(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왕실의 사당)에 배향(공신을 종묘에 모시어 제사)되었으며, 파주의 방촌영당, 상주의 옥동서원, 장수의 창계서원에서 제향함청백리로 선정되고 시호(諡號 : 익성공(翼成公))를 받음

*익성(翼成) : 익(翼) : 사려가 심원하다는 뜻성(成) : 상신(相臣 : 정승)이 되어 할 일을 능히 다했다는 뜻※ 열성공(수신)의 공훈으로 순충보조공신 남원부원군(純忠補祚功臣 南原府院君)으로 추증


<방촌 황희정승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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