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 1682(숙종 8) - 1728(영조4)
* 자 : 성재(聖在)
* 호 : 노정(鷺汀)
* 시호 : 충렬(忠烈)
* 관직 : 대사성(大司成)* 세계 : 석부-균비-군서-희-치신-사장-섬-기준-열-정욱-혁-곤후-상-이미-성-처신-선(17세)
문정공 정욱(廷彧) 7세손1710년(숙종 36) 진사( 進土 )가 되고, 같은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세자시강원 설서(世子待講院說書)를 지낸 뒤 1719년 (숙종 45)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정사(正使) 홍치중(洪致中)과 함께 일본에 건너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가자(加資)되었다.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로 무장(茂長)에 유배, 이어 양덕(陽德)에 이배(移配) 되었다가 다시 1725 년(영조 1) 평산(平山)에 이배된 후 석방, 예조참판(禮曹參判),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거창(居昌)에서 정희량(鄭希亮)이 이끄는 반란군과 맞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감영(監營) 안에서 갑자기 죽었는데, 독살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도승지 박사수(朴師洙)가 상훈(賞勳) 주청(奏請)을 하였고, 1733년 지사(知事) 김재로(金在魯)가 공로 포상을 거론하였으며, 평안감사 박사수(朴師洙)가 다시 포상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1788년(정조 12)에 가서야 실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