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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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인물

석(王+奭) 初名 瑛
작성자장수황호안공파(hwgej@naver.com)작성일2022-10-13조회수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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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몰년 : 1848(헌종15, 戊申)6월12일~1919己未正月8日

* 호 : 석정(石庭),

* 관직 : 조선중직대부광릉령남도의병장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세계 : 석부-균비-군서-희(방촌)-치신(호안공)-사효(양정공)-개-윤공-적

-정윤-면-경구-함-익계-전-처환-령-종묵-석(19세)

 

양정공의 13대손.

43세에 관직에 나가시어 벼슬이 “중직대부광릉령(中直大夫光陵令)에 이르시었으나 충청 전라지방에 민란이 일어나 백성들의 재물을 갈취하고 괴롭힘으로 의병을 일으킬 것을 자임(自任)하시고, 고향인 남원(南原)으로 내려가시어, 마비상태에 놓인 관청을 정비하고, 군대를 재편하여 진압하고, 경내에 안정을 찾게 하였으며, 을미년에 왜인(倭人)이 난을 일으켜 왕비를 시해하고, 신민(臣民)들이 협박에 못 이겨 삭발을 하였으며성상(聖上)이 남의 나라 관사에 머무르고 나라의 명령이 오랑캐에게서 나오게 되니 나라의 존망이 조석에 달려 있는지라, 직접 글을 지어 도내 유림들에게 통문을 돌리고 거사를 도모하였으나 성사하지 못하고 기우만선생의 나주(羅州)의거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각 도의 의병을 해산하라”는 칙서가 내기고 관군이 의병을 토벌함으로 고향에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니 “이 조약은 일정하게 내려온 500년선왕(先王)의 강토가 저희들 보호 속으로 들어갔으니, 다시는 이 하늘아래에서 나라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하고 지사(志士)들을모아 거사를 도모하였으나 염탐꾼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경술년에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니 통곡하여 “이제 천하일이 모두 끝났으니 죽지 않고 무엇하리오”유서를 남기고 자진하려 하였으나 가족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네 앞 “舞山峰”에 "倚斗臺”를 쌓고 조석으로 이곳에 올라 황제께서 게시는 북쪽을 향하여 망배하면서 정성을 다 하시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께서 승하하셨다는 비보를 들으시니 땅에 쓰러지고 절규하시다가 혼절하고 깨어나시기를 여러번 하였다.

음력 정월 초삼일 선고(先考)의 忌日에 제사를 간소하게 차려 술잔을 올리신 후 거처하는 방으로 물러나 유서(遺書)와 절명시(絶命詩)를 지어 남기신 후 “하루를 살면 하루가 욕이요 이틀을 죽지 않으면 이틀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서 결단코 自決하여 돌아가신 산제(先帝)를 호종하여 천상옥경에서 모시고 원수의 백성이 되지 않으려 한다”고 하시면서 단도를 가지고 목을 찌르니 가족들이 놀라 급히 구했으나 이미 뜨거운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의원(醫員)도 부르지 못하고 단방(單方)으로 치유한 후 가족들이 번갈아 처소를 지켰으나 6일이 지나 가족들이 잠깐 방심한 사이 두 번째 목을 찔러 自決하시니, 이때가 高宗皇帝 장사지낸 다음 날이었다.

倚斗臺아래 장사 지내는데 길 가는 사람들까지 머리 숙여 울었으며 東農 李太宇 烈士는 아래와 같은 詩를 지어 忠節을 지킨 先生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參奉 瑛(王+奭) 殉節輓

 

그대는 스스로 능히 殉節을 하였는데 나는 그러지도 못하고 살아남아

그대 소식 듣고 놀라 한밤에 등불심지만 돋구고 있네

 

조선조 오백년 社稷이 끝나게 된 지금

칠십에 삼년을 더한 후 순절의 영화와 경복을 누렸구려

 

저승에서는 마음 편안하니 혼백 또한 편히 잠들겠는데

이승에 남은 이 인간 놀래서 담이 떨어지고 머리 깎아 중 되었노라.

 

남쪽고을 백발노인들 만사(輓詞)로써 조상(弔喪)하고 있는데

北斗星에 기댄 높은 산이 층층(層層)으로 푸르러 돋보이는 구려!

(※ 漢詩<七言絶句>를 權寧八 선생께서 번역한 내용임)

 

日帝의 핍박으로 대부분의 遺物이 消失되어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근년에 石庭文集과 大韓?山墓誌, 鎭安鄕校誌, 南原誌, 全北地方의 古文書 等 여러 文獻에서 忠節事實이 발견되어 2001년(辛巳年)에 儒林主管으로 忠義紀蹟碑를 건립(碑文:成均館長 崔昌圭 撰)하고 “石庭遺稿”를 發刊하였으며, 2002년 국가보훈처에 보고하여 같은 해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追敍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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