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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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인물

혁[赫, 1551~1612]
작성자장수황호안공파(hwgej@naver.com)작성일2022-10-13조회수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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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몰년 : 1551(명종 6) - 1612(광해군 4)
* 자 : 회지(晦之)
* 호 : 독석(獨石)
* 관직 : 승지
* 세계 : 석부-균비-군서-희-치신-사장-섬-기준-열-정욱-혁(11세)

문정공 정욱(廷彧)의 아들
기대승(奇大升)의 문인. 1570년(선조 3) 진사(進士)가 되고 1580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 집의(執義) 사간(司諫)을 역임했다. 그 뒤 우승지(右承旨)에 이르렀 다가 1591년(선조 24) 정 철(鄭 澈)이 건저문제(建儲問題)로 위리안치(圍籬安置)될 때 그 일당으로서 삭직(削職)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군(護軍)에 등용되어 아버지 정욱(廷彧)과 함께 사위인 왕자 순화군(順和君) 보(?)를 따라 강원도를 거쳐 회령(會寧)에 이르렀으나 모반자 국경인(鞠景仁)에게 잡혀 왜군에 인계되어 안변(安邊)의 토굴(土窟)에 감금되었다.

이때 왜장(慶將) 가또오(加購淸正)로부터 선조에게 항복 권유문을 쓰라는 강요를 받고 항복 권유문을 썼다. 그러나 몰래 별도로 아버지 정욱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글을 보냈는데, 1593년 부산(釜山)에서 두 왕자와 함께 송환된 후 항복 권유문을 트집잡은 동인(東人)들의 탄핵으로 이산 (理山)에 유배 뒤에 신천(信川)에 이배(移配) 되었다.

앞서 이이첨(李爾瞻)을 풍자시(諷刺詩)로 공격한 일로 그의 미움을 받아 1612년(광해군 4) 순화군의 아들 진릉군( 晋陵君) 태경(泰慶)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무고를 받고 투옥되어 옥사(獄死)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복관되고 좌찬성에 추증, 장천군(長川君)으로 추봉되었다. 저서에 《독석집(獨石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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